주식회사 두번째 이야기, 주식회사제도는 한국에 어떻게 이식되었을까.

이번부턴 솔직히 나 같은 뜨내기가 아닌 역사학자의 도움을 받아야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의 주식회사제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한말 자본의 원시축적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이것이 회사제도로 발전하는 과정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이해해야 할텐데 이과정에 일제강점기라는 outlier가 발생하였고, 이 기간동안 사회적으로는 노비 및 상반제도가 무너지는 과정을 중첩적으로 거치는 등 매우 짧은 시간에 너무나 많은 구조적변화를 복합적으로 겪게 되었기에 당시의 need와 이해관계만으로도 주식회사를 설명할 수 있는 유럽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아…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다. 내가 왜 이 복잡하고 어려운 짓을 시작했나 후회가 된다 ㅠㅠ. 지난번 시작한 양자역학 진도도 절반도 못나갔는데 …

해서, 그냥 거두절미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해야겠다. 내가 느끼고 있는 핵심에 가장 가까이 접근하는게 중요하니까.

솔직히 한국은 주식회사제도가 서구에서와 같이 사업주와 자본가의 이해관계 속에서 주체적으로 형성된게 아니라 그냥 강점기를 통해 강제로 일본 제도가 임플란트된 케이스이고, 일본의 주식회사는 동인도회사의 복제판이었으므로 사실 내용으로는 대동소이 하다고 봐도 좋다. 따라서 문제는 제도 자체가 그것이 받아들여지 과정에 있었다 본다.

즉, 주식회사제도의 특징인 소유과 경영의 분리라는 대전제가 처음부터 먹히기 어려웠던게, 구한말까지 형성되어 왔던 한국의 부(富, 아마도 대표적인 예가 경주 최부자라던가 일부 개성상인 등)는 강점기 일본자본에 의해 거의 자취를 감추었고, 일본자본의 근본이 당시 제국주의의 대륙식민지 진출을 위한 국가중심(국가+황실+일본자본가)의 기업이었다는 점에서 형태만 주식회사의 구조일 뿐 대부분 일본 군국주의 확장을 위한 수탈 전문기업이라고 보는게 맞을 듯 하다.

이의 대표적인 예가 1908년에 설립된 동양척식주식회사인데 이 회사의 기본모델이 다름아닌 동인도회사이지만 인도에서 와는 달리 사업주, 자본가 모두 일본 군국주의 (이걸 국가독점자본주의라카나?) 집단라는 점이 큰 차이가 아닐까 싶다. 그런 점에서 한국 주식회사에서의 모호한 사업가-자본가 구조(미분리)는 아마도 여기서 태동되었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모르건데, 식민지를 경험했던 이전 세대들에게 있어 [주식회사 = 국가 또는 지배자] 즉, 이해관계 집단이 아닌 권력/지배세력 집단의 이미지가 강하게 스며들어 있을 것으로 생각되며 이러한 이미지는 후대를 거쳐 지금까지도 영향이 남아 법제도와는 무관하게 한진오너 갑질의 심리적 밑밥이 되어주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 이 지점에서 갑질이야기가 나왔으니 한국역사, 특히 신분제도 변화의 특수성을 다시한번 들쳐봐야 한다.

오늘은 여기까지… 갈수록 태산이다…

PS:

주식회사 바로알기 세번째 이야기(구한말 신분제도와 회사제도)를 주말에 정리해 두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올릴 자신이 없다.

글이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기업문화의 오리진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과 너무 닮아 있는데다가 구한말 신분제도의 굴레를 그대로 껴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우리의 추한 민낯을 되돌아봐야 하는데, 이런걸 그냥 페북에 싸지르는 것은 – 이미 다 알고 있는 이야기임에도 – 우리의 오리진 일체를 무차별적으로 부정하는 무책임한 배설행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에는 아직 우리나라에 “기업가(Entrepreneur)”로서의 본분을 다하려는 분들이 많이 계신다. 해서, 신분제도 이야기는 그냥 빼기로 했다.

다음편은 우리가 법에 의해 약속되어진 룰을 따른다면, 그리고 절대다수의 주주(이건 최대주주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와 회사의 미래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이해에 기반한다면 회사는 어떻게 굴러가는 것이 맞는 것인지에 대해 우리 모두가 이미 다 알고 있는 이야기로 이 지루한 스스로의 복습과정을 마치고자 한다.

# 2018.4월부터 3차례에 걸쳐 페이스북에 포스팅했던 주식회사 바로알기 관련 글들이다. 페북의 가장 큰 단점인 자신글 검색곤란 때문에 블로그로 옮겨 적는다.

요즘 재벌 갑질이 화두가 되면서 한편으로 주주의 권리, 이사회의 기능, 이사의 책무 등에 대한 기사들도 간혹 올라오고는 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기사들은 ‘오너일가의 인간성’에만 집중되고 있는게 현실이다. 그럼 인간성 좋은 오너가가 있는 재벌은 괜챦다는건가?

그래서 시간날때마다 주식회사라는 제도, 한국에서의 이식과정 등을 살펴보고 왜 현재 한국의 주식회사가 또는 그 거대 확장형인 재벌이 왜 이런 모습을 가지게 되고 국민들은 왜 이렇게 바라보게 되었는지 끄적거려보기로 했다.

때문에 그냥 생각가는대로 짬짬이 쓰게 될터이니 두서가 없을 듯 하다. 덕분에 생각도 정리해보고…

그 첫편으로 역사책에 나오는 주식회사제도를 찾아보았다. 
역사적으로는 고대 로마의 퍼블리카니(publicani)라는 형태를 이야기하지만 근대적으로는 모두들 대항해시대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를 그 기원으로 보고있다.

즉, 해상운송이라는 당시로서는 매우 리스키한 대형사업에 다수의 투자자를 모으는 방식에서 유래했다는 것인데 처음에는 높은 배당수익이 관심을 끌었지만 암스테르담 곡물거래소를 본딴 증권거래소가 설립되면서 부밍이 되어 회사의 대표적인 형태로 자리잡게 되었다고 한다.

아시다시피 주식회사제도는 원금손실에 대한 책임이 없으니 사업주도 은행대출과는 다르게 좀더 공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재원이었으므로 당시 해상무역을 중심으로 다양한 물품과 형태의 무역거래가 융성하게 되는데 중요한 모험자본(Venture capital)을 형성해 준 것이다.

이 와중에 재빠른 유태인 금융자본가들이 사업주를 대신하여 bond라는걸 발행해서 자금을 공급해주는, 향후 근대적 투자은행(IB)의 underwriting업무를 시작한 때도, 항해의 위험을 담보해주는 보험업이 태동한 것도 이즈임이었다.

따라서 이들 사업주가 계속기업으로써 credit을 쌓아가고 profitable한 사업가임을 증명하는 유일한 길은 좀더 새로우면서 매혹적인 상품들을 식민지에서 찾아내어 좀더 크게 유럽에 공급하는 일이었고 이게 그냥 사업가들의 nature였던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바로 유통될 수 있는 주식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경영과 주주가 분리되어야한 했다는 것이다. 주주가 주식을 팔어 다른주주가 주인이 되더라도 경영(사업주)은 무관하게 지속되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합명회사에서와 같이 경영자 = 주주이기 때문에 지분을 빼게 되면 계속기업으로서 문제가 발생할 수 밖에 없었고 새로운 투자자를 영입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주주들이 생각하기에 사업주가 영 경영을 못해서 주식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고 판단된다면 사업주를 갈아버릴 필요도 있기 때문에 대다수 주주의 의견을 물어보는 주주총회도 생겼을 것이고,이사회라는 전문가 의결기구를 내부에 만들어 주주가 이사를 선임함으로써 사업주를 견제하면서도 좀더 전문적이고 대규모의 사업을 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나중에는 이것도 못미더워서 이해관계자가 아닌 외부전문가를 ‘사외이사’라는 이름으로 이사회에 앉히고 감시하도록 했다)

결국 주식회사 사업주(이것이 우리가 흔히들 사용하는 ‘오너’라는 개념일 것이다)의 가치는 자기가 얼마의 지분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스스로의 경영능력으로 주주들의 지지를 받느냐의 문제였기 때문에 사실상 서구에서 주식회사의 오너라는 개념은 매우 낯설을 수 밖에 없으며, 그것(사업주)이 자손에게 대물림된다면 주식회사라는 제도의 장점을 전혀 살리지 못하는 것은 물론 주주들이 이런 회사에 투자할 이유도 없게된다. 난 개똥이의 능력과 개똥이의 경영전략에 투자했지 내가 알지도 못하고 검증도 안되는 개똥이 아들이나 손자한테 투자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사업주이면서 대주주인 개똥이나 개똥이 아들입장에서도 자신들이 가진 주식가치의 극대화를 위해 자신과 함께 일해온 사업가들과 시장의 뛰어난 인재들을 모두 재쳐버리고 그저 개똥이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개똥이아들을 사업주의 자리에 오르게 할 이유가 전혀 없다.

너무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이것이 바로 주식회사의 근본이다. 돈을 가진자와 사업을 잘하는 사람들이 만나 가장 합리적이고 전문적으로 돈을 불려나가는 방법 말이다.

다음에는 그런 주식회사가 우리나라에는 왜 지금의 모습이 되었을까 생각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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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이일차.
다행히도 눈보라는 다소 치고 파란하늘이 빼곰히 구름사이를 드러낸다. 하지만 바람은 역시 괜히 제주도가 아니었다. 정말 날아가는줄… 이몸띵이가 몇키로짜리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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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피해 오설록으로 향하던중 잠시들린 제주 예술인 마을… 제주현대미술관 성큰가든이다. 제주 예술인마을은 금번 제주방문의 숨은보석 되겠다. 헤이리마을과 유사한 컨셉이긴한데 제주특성이 잘 살아있기도하고 무엇도다 시골정취가 잘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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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한 오설록 녹차농장의 이니스프리 제주하우스. 애들이 비누체험하는 동안 따듯한 오뎅궁물을 흡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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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지인의 도움으로 제주올레리조트에 숙박을 풀었다. 지난번 방문했을 때도 느꼈지만, 이건 본인이 살겠다는 의지가 아니면 나올 수 없는 애정이다. 이건 거의 예술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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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마음에 떠나지 못했던 휴가를 연말이 되어서야 가족들과 함께 제주도로 향했다.
벗뜨! 따듯한 휴양의 섬 제주도에 대설쥐보라니!!! 이건 뭐 거의 설폭풍 수준이다.
근데 눈보라에 산산히 부서지는 파도를 바라보고 있자니 왠지 통쾌 상쾌함이 스멀 올라오기 시작한다. 흐흐 3년전 올레여행에 이어 이거 아주 색다른 제주여행이 될듯하다ㅋㅋ.

응답하라 1994_2

응답하라 1994 3

응답하라 1994.
첫회에서 고아라가 주연이라는데 놀랐다. 신문기사에서와 같이 청소년드라마에서 굳어져 버린 이미지를 어찌 벗어날 수 있을지 궁금했는데, 회차를 거듭하며 이러한 우려가 그저 기우에 불과했다는걸 선 굵게 그어주었다.
그리고 4회, 이 씬은 아마도 그녀의 인생에 있어 배우로서의 고아라를 확실하게 각인시키는 장면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ㅍㅎㅎ!!!
난 하정우 먹빵보다 이게 더 실감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