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스텔라 (Interstellar, 2014) 우주를 향했던 세상 모든 Pioneer에 바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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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스텔라와 관련된 워낙 많은 감상과 언급들이 올라온 뒤라 뜨뜨무리한 뒷북이 될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SF광이기도 하고 허접한 아마추어 천문가인지라 인터스텔라는 그냥 영화가 아니라 수십년에 한번씩오는 혜성과도 같은 “행사”였으니 당연 “영접”을 하고 “찬양” 해야할 대상이었습니다. 다행히 그 혜성은 제게 멋진 모습은 물론 긴 꼬리와 같은 여운을 남겼습니다.

아마추어천문가들이 별을 쳐다보는 이유는 꽤나 다양합니다만, 저는 항상 세상의 “궁극”이 궁금했고 이내 하늘에서 그 궁금을 풀 수 있으려나 하는 마음에 별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이게 인터스텔라가 그리도 끌렸을 이유였나 싶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글을 끄적이는 이유는 조금 다른데 있는데 그것은 바로 “놀란은 과연 이 영화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싶었을까” 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답이 혹시 우주의 시대를 연 모든 개척자(Pioneer)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게 아닐까 생각되었습니다.

재미있게도 이 영화는 쿠퍼의 꿈, 자신이 테스트파일럿이었을 때 조정하던 레인저가 추락하는 꿈에서 시작됩니다. 즉, 쿠퍼의 꿈은 우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스라져가는 지구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죠. 어쩌면 쿠퍼의 악몽은 우주로 나아가고 싶었던 한 pioneer의 좌절에서 시작되었을지 모릅니다. 농부가 되어버린 비행사이자 엔지니어인 현실의 쿠퍼인게죠.

이런 쿠퍼의 아쉬움과 열망은 우연히 나타나 농장위를 날던 드론을 쫓는 장면에서 너무나도 확연히 들어납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종이비행기를 쫓듯, 너무나도 천진난만하면서도 행복해 보이는 쿠퍼를 보게 됩니다.

그러나 쿠퍼는 가족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너무나도 사랑하는 어린 딸 머피가 있죠. 하지만 그는 결국 딸의 곁을 떠나 우주를 향하게 됩니다. 과연 그가 인류의 미래를 책임져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 때문에 딸을 떠난 걸까요? 글쎄요. 저는 그것보다 혹시 쿠퍼가 자신이 잃어버렸던, 또는 잊혀졌던 꿈을 다시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모든 선구자들의 길이였으니까요.

이야기를 조금 돌려서 놀란이 영향을 받았던 영화중에 1983년 필립카우프만 감독의 “The Right Stuf”이라고 70년대 미국 우주비행사들과 초음속에 도전하는 테스트파일럿들의 실화를 기반한 영화가 있습니다. 아주 전형적인 pioneer들의 이야기인데 여기 나오는 핵심인물들은 모두 “스스로”의 한계를 깨기 위해 도전을 합니다. 국가나 미래가 아니고 말이죠. 이들이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은 다시 비행을 하지 못하게 될 상황 뿐입니다.

쿠퍼도 마찬가지 입니다. 쿠퍼가 다시는 딸을 못볼지도 모른다는 리스크를 알면서도 쿠퍼와 가족을 뒤로하고 우주로 향했던 건, 바로 pioneer로서의 그의 본능을 이길 수 있는 건 이미 없었던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쿠퍼가 5차원의 공간에서 그리도 딸을 향해 오열했던 것도 그저 도전만이 pioneer의 본모습이라 믿어왔던 자신이 딸을 떠나는 모습을 다시 마주하게 되면서 너무도 미안하고 고통스러웠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쿠퍼는 자신을 보고 울부짖죠. “Stay”라고 그냥 농부로 남아 머피와 함께 있으라고 말이죠.

하지만 쿠퍼는, 모든 pioneer들이 늘 그래왔듯이 답을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그는 또다른 도전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놀란이 말하고 싶었던게 아니었을까요?

어쩌면 인터스텔라는 우주를 향했던 세상의 모든 pioneer들에게 바치는 헌정일런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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