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주변에 day to day로 마주치게 되는 일상의 모든 것들은 그것이 좋든 별로던 그것만의 design을 가지고 있다.

기술의 진보와 보편화는 디자인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시켜 왔으며 소비자입장에서 무엇인가를 선택하는 중요한 요소로 부상하는 가운데 특히, value chain내 제조와 유통의 분리는 이를 더 가속화시켜왔다.

그렇다보니 과거 그저 만들기만하면 되었던 산업분야 -주로 산업/공공용 제품 등 B2B영역 – 에도 디자인이 서비스나 제품을 선택받게 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 한국에 있어 디자인을 아직 부가적인 ‘노오력’의 영역으로 바라보는 기업들이 많고 – 이는 대부분 과점영역에서 두드러진다 – 전혀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워낙 많은 것들이 여기에 속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우리가 선택했다기보다는 우리에게 그냥 던져진 디자인이다보니 관심 꺼버리고 지나치는게 대부분인데, 비상식적인 것들을 보고 넘어가기엔 좀이 쑤시는 성격인지라 마주칠때마다 한번씩 꼬집어 봐야 직성이 풀릴 것 같다.

물론 이런게 가능해진건 전적으로 스마트폰의 덕이다. 디자인이라는 것들이 눈에 보이는 것이 많은지라 찍어 올리면 공감하기도 좋다.

그 첫번째 희생양은 매번 집을 들락거리면서 이용하게 되는 엘리베이터속에서  마주치게 되었다. 하루에 최소한 2번.

이 엘리베이터는 국내 H사 제조 제품이고 아마도 왠만한 신축건물, 또는 교체설치되는 대부분에서 볼 수 있을 정도로 흔하다. 때문에 흔하디 만큼 여러군데에서 욕을 먹고 있는 제품이기도 하다.

먼저 아래 사진을 먼저 보자.

내가 이런 형태와 기능의 버튼을 처음 본 것은 옛날 직장이던 산업은행에서 였다.

여의도로 본사를 이전하면서 아방가르드(?)한 건물디자인에 맞추어 엘리베이터도 혁신적인 디자인이 적용되었었다.

내기억으로 산업은행 제품은 H사가 아닌 K사나 L사 제품이었던 걸로 기억했는데 버튼 숫자에 LED 후광을 넣어서 누르면 불이 들어와 좀더 명확히 선택 층수를 볼 수 있게 만든,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이었던 제품으로 기억되고, 이후 거의 모든 엘레베이터 버튼에 공통적으로 적용된 디자인이기도 하다. 다만, 산은의 버튼은 정말 혁신적이었던게 백라이트가 “파란색” 이었다.

문제는 이걸 제대로 만들면 이쁘고 기능적으로도 훌륭할텐데,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개념없이 만들면 이와같이 어처구니없는 디자인이 되고 만다.

좋은 디자인의 전제조건은 그것이 최소한 바라보기용이 아니라 기능적으로 보편타당해야하고, 특히 엘리베이터같이 안전과 깊게 관련되어 있고 일반인들이 오퍼레이팅하는 공공제품은 더욱이 기능적부분을 감안하여 디자인해야만 좋은 다지안이라 말할 수 있겠다.

따라서 엘리베이터 버튼의 디자인은 버튼의 목적 – 가고자 하는 목적 층을 선택 -을 달성하는데 합목적성을 달성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엘리베이터는 통상 혼자타지 않는 한 문이 닫힘과 동시에 작동된다는 점에서 버튼 조작을 위한 시간은 때때로 매우 제한적이다. 때문에 직관적으로 – 숫자의 배렬로 인해 – 층수를 파악할 수 있는 시인성이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But, 특별히 말을 안해도 위 사진을 보면 느낌이 팍 올것이다. 잘 안보인다.

내 나이에 뵈도 이정도인데 노인층들은 어쩌겠는가. 사실 엘리베이터에 들어와서 버튼을 찾아 헤매는 노인분들을 수없이 보게 된다. 그나마 아파트같이 매일쓰게 되면 위치적 감이 있어서 실수를 덜하겠지만 처음가는 건물 등에서는 버튼을 찾느라 당황할 수 밖에 없고, 심지어 엘리베이터안 조명이 어두우면 정말 욕나오기 일수다.

시인성이라는게 색상의 대비정도도 있겠지만 1차적인 요소는 아무래도 명암대비이다. 그래서 위 사진을 흑백으로 바꾸어 보았다.

보이시는가? 버튼 안쪽을 무광처리하면서 오목하게 만들다보니 반사광의 각도에 따라 심한 경우에는 글자가 아예 보이지가 않는다.

게다가 약간 어이없는게, 금속재질에 타공을 해서 숫자를 만든게 아니라 플라스틱 수지에 금속코팅을 해서 만들다보니 자꾸 손으로 누르게 되면 금속코팅이 지워져서 숫자를 알아보기 힘든 경우도 있다.

더욱 심한 케이스를 보여주면 다음과 같다. 같은 제조사의 고층용 제품으로 보인다.

죽이지 않는가. 보자마자 욕이 올라온다. 이걸 어떤 생각으로 디자인한 건지 진짜 모를 일이다. 점자를 안다면 맹인용 점자로 파악하는게 더 빠를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모든 엘리베이터가 이렇지는 않다.

아래 버튼은 약간 구식이긴 하지만 시인성은 훨씬 좋다. 개인적으로는 위제품(T사로 보인다)이 시인성도 좋고 고급져 보인다.

경쟁기업에서도 이와 비슷한 버튼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평면 금속버튼에 후광글자를 넣어서 H사 것과 같이 시인성이 떨어지지는 않는다.

이 다자인의 가장 큰 문제점은 금속바탕에 흰색이 명도대비로 볼때 가장 시인성이 좋음에도 불구하고 발광시 붉은색을 내기 위해 번호색상을 벽돌색으로 하다보니, 켜졌을때는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꺼져 있을때 명도차이를 떨어뜨려 시인성을 해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이럴것 같으면 번호를 흰색으로 하고 백라이트를 붉은색 LED로 하면 훨씬 좋은 선택이 되었을 것이다.

……

여전히 내가 보아온 엘리베이터 버튼 중 산업은행의 푸른 백라이트버튼이 가장 보기좋은 버튼이었다 (게다가 버튼취소가 되는 가장 첫 엘리베이터였다). 엘리베이터 버튼이 별거 아닌지도 모르겠지만 그 건물을 접하게 되는 user experience중 매우 앞선 경험중 하나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것을 이야기하기전에 안전과 관련된 기계장비라는 점에서 좀더 세심한 배려가 있었으면 한다.

“주식회사 바로알기” 끝맺음을 해야할 것 같다. 어찌하면 주식회사가 당초의 아이디어대로 잘 돌아갈 수 있을까…

다시말하지만 주식회사는 소유가 목적이 아니라 소유와 경영간의 분리를 통해 이의 균형이 이윤극대화로 연결된다는 신념에서 비롯된 법인구조이다. 따라서 사업자에게 있어 소유가 중요한 이슈이고 계속 그 끈을 놓고 싶지 않다면 주식회사가 아닌 좀더 인적회사에 가까운 회사구조를 선택해야 한다.

아주 낮은 차원으로는 그냥 개인사업을 하던가 아니면 조합, 합자회사, 합명회사, 유한책임회사 등 제법 다양한 회사구조가 존재하며 국가도 이러한 다양한 회사구조가 적합하게 활용될 수 있도록 계도하고 교육시킬 필요가 있다.

따라서 주식회사를 하고자 한다면 절.대.로 그 회사가 “창업주의 것”이라 생각하면 안되며 사업주가 당초 제시하고 모든주주 (절대로 최대주주가 아니다)가 합의하는 방향으로 회사를 이끌어 나아가야 하며,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였을 때에는 (손실일 수도 있고 합의된 목표 미달성일 수도 있다) 회사가 좀더 합목적적으로 이를 달성할 수 있는 경영진으로 교체하여야 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게 그가 만약 51%가 넘는 최대주주라면 어찌해야 하는가 이다. 아무리 blame을 해보았자 주총에서 경영자의 위치를 내어 놓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는 이런 형태의 주식회사는 올바른 형태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이럴꺼라면 애당초 다른 형태의 회사형태로 사업을 했어야 했다고 본다. 물론 주식회사라도 기업공개 이전까지는 나머지 주주들이 대부분 창업주와 이해관계자이거나 상당수준 회사와 창업주를 투자계약을 통해 콘트롤 할 수 있는 기관투자자들이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상장된 이후에는 Public company로써 소유와 경영이 완전히 분리되는게 주식회사의 기능을 극대화시키는 방법이고 그러기 위해서라도 당초 창업주의 지분은 적절히 분산되어야만 한다(이게 IPO의 여러 원칙 중 하나이며 이들 기업을 Public Company라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혹자는 이런 지분분산이 회사의 경영권을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웃기는 소리다. 주주들은 경영자가 뛰어나서 그를 선택한 것이지 그가 지분이 가장 많기 때문에 선택한게 아니기 때문이다. 대항해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사업주에게 자본가들이 돈을 대준 것은 그가 제시한 사업계획과 그의 능력 때문이지 그가 돈이 많기 때문이 아니었음을 상기해 보라. 돈 많았으면 투자자가 필요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때문에 그가 심지어 지분을 하나도 남기지 않았더라도 그가 그 회사를 가장 잘 운영할 수 있다면 그는 경영자로 남게 하는 것이 주주들의 결정이어야 한다.

그러니 제대로 사업을 하지 못하는 경영자들을 바꾸지 못하고 내버려두는 주주들은 결국 그가 그저 잘먹고 잘살라도 돈을 기부한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뭐 이런걸 거창하게 주주행동주의입네 부르기도 하지만, 그냥 심플하게 내돈 가져간 놈이 재대로 일하고 있는지 지켜보라는 아주 간단한 논리이다. 이게 제일 중요하고 여기에서부터 모든 주식회사, 증권시장, 자본시장의 원리가 시작되는 것이다.

알다시피 미국 대부분의 기업들 중 2세가 기업경영을 이어받는 경우는 상장기업중에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고,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비상장기업중에는 아주 유명한 몇몇 기업들이 가족경영체제를 유지하기도 하지만, 그 내부에서는 일반기업들보다도 더 엄격한 경쟁의 룰이 적용되며 일부 기업은 마치 천국을 연상케 한다(데이터분석전문기업인 SAS가 대표적인 예이다)

그런데 왜 유독 우리나라만이 (물론 필리핀을 비롯한 정치후진국들이 꽤 많지만 그건 그들이 역시 후진국이라는 증명일 뿐) 이런 변칙적인 주식회사제도를 유지하게 되었는지는 앞서 설명한 한국만의 독특한 사회역사적 환경에 기인한 바가 큰 바, 이의 총체적 변화전에 주식회사제도의 올바른 운영을 기대하는 것도 사실 공염불일 것이다.

나름 가족경영의 독재적 시스템하에서 이루어온 플러스 요인이 없었다 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데에 아니요를 들이댈 증거나 논리도 없음은 매한가지이다. 하지만 우리보다 백년이상 앞선 주식회사제도를 이용하여온 선진국가들의 결론은 한가지이다. 원래 제도의 목적을 최대한 살리는 것이 그 제도를 가장 잘 활용하는 방법이라고. 그게 아니라면 벌써 없어졌을 제도였을 것이다.

요즘 국내게임사들의 실적과 주가를 보고자 하면 같은 산업내에서도 채널이 PC와 모바일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리도 다른 길을 보여주는걸까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만든다. 그래도 결국은 “콘테츠의 질”이다라고 생각해왔는데, 그마저 최후의 보루라던 블소의 실적부진을 바라보고 있으면 “아…이건 정말 대세가 바뀐걸까”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그러던중 오늘 귀가길 스마트폰에 다운받아 놓았던 팟캐스트 “빨간책방” 업데이트에서 너무나도 속 시원한 진단을 찾아내고 말았다.

그동안 영화평론가 이동진씨와 김중혁작가가 이끌어오던 포맷에 만화가 강풀 작가와 윤태호 작가가 초대되어 웹툰시장이 한국 만화콘텐츠시장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를 그야말로 살아숨쉬는 당사자들의 입을 통해 듣게 되었던 것이다.

 

요약해보면 인터넷이 보급되기전 만화의 주된 유통채널은 소위 “만화방”, 즉 만화대본소였고 이 오프라인 공간을 통해서만이 작가와 소비자가 만날 수 있었으니, 당연히 작가들도 “만화책”이라는 미디어포맷에 기초하여 만화를 그릴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인터넷은 모든걸 바꾸어 놓았다. “페이지” 단위로 제한된 공간의 “turn” 방식에서 “모니터 화면의 연속적인 스크롤” 방식으로의 전환은 단순히 만화를 보는 방식 뿐만 아니라 만화를 그리는 방법까지도 통째로 바꾸어 버린 것이다. 때문에 웹툰으로 성공한 만화를 단행본책으로 발간한다거나 반대로 단행본 만화를 웹툰으로 바꾸는 작업은 원작이 주는 감동의 오리지날리티를 유지하기 여간 힘든일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웹툰은 이러한 독자와의 커뮤니케이션 방법에서 뿐만 아니라 만화작가들의 등단 시스템을 출판사가 아닌 self publishing형태로 바꾸게 됨에 따라 수많은 작가지망생들이 자유의지에 따라 독자들과 접촉하게 이르게 되었다.

 

그런데 왜 작가들은 만화대본소의 만화책에서 PC를 매체로 하는 인터넷 공간을 택한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더이상 독자들이 대본소의 좁은 공간이 아닌 “PC방”을 문화콘텐츠의 소비장소로 바꾸어 버렸기 때문이다. 즉, “바꾼게” 아니라 “따라간”것이라는 말이다. 만화를 인터넷 공간에 걸어 놓지 않으면 더이상 만화를 소비하지 않게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좀더 낮은 비용으로 보다 자유롭게 독자들과 접촉할 수 있다라는 “장점”이 작가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동인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장점이 실제 작가들에게 “돈”이 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인터넷과 컴퓨터의 속성상 저작권을 보호받기 너무나 어려운데다가 특히 블러그나 개인홈페이지를 통한 퍼블리싱 시스템은 그야말로 Monetizing 이 안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웹툰이 대세인 지금에 있어서도 여전히 작가들은 포탈로부터의 작가료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고 (물론 완간본의 경우 유료화서비스가 도입되어 좀더 안정된 생태계가 만들어지고는 있다.) 오히려 웹툰으로 인해 양산된 폭넓은 작가층과 작품들을 감안한다면 전체적인 경제성은 더 어려워졌다는게 두작가들의 평가이다. 따라서 어찌보면 강풀 작가와 윤태호 작가는 이렇게 변화된 시장환경에 매우 빠르게 (사실은 선구자가 되어) 적응했기 때문에 현재의 스타작가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물론 두작가의 작품은 단순히 시스템으로만 치부하기에는 훌륭한 작품들이 많다)

 

그런데, 이 이야기 어디서 많이 들어본것 같지 않은가?

그렇다 바로 게임산업에 있어서 기존 PC온라인에서 모바일로의 전환 과정이 바로 동일한 경로를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PC온라인, 특히 MMORPG나 FPS 게임들은 PC라고 하는 매체를 통해 개발사와 유저들이 만나게 되었고 그렇다 보니 개발사들은 PC에 적합한 UX와 퀄리티를 바탕으로 게임을 개발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었다. 허나 문제는 모바일디바이스, 특히 스마트폰과 태블릿기기는 기존 PC와는 다른 UX와 무게감을 가질 수 밖에 없었고, 여기에 카톡 등 모바일 중심의 Social Graph는 새로운 형태의 모바일 게임을 탄생시키게 되었다.

 

이렇다보니 마치 만화독자가 더이상 대본소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지 않듯이 게임유저들도 더이상 PC모니터앞에 앉아있지 않게되고 결국은 그들이 옮겨간 모바일기기의 디스플레이에 포커싱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재미있게도 이러한 환경변화는 게임개발자에게 있어서도 Open Market이라고 하는 완전히 다른 시장구조를 경험하게 되는데, 이는 바로 과거 만화대본소라는 closed 마켓시스템에서 웹공간이라는 오픈시스템으로의 전환 과정과 매우 닮아 있다. 심지어 이러한 오픈마켓시스템으로의 전환이 보다 많은 개발자들이 유저들과 만나는 기회를 마련해주기는 했지만, 여전히 가히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모바일게임수를 감안해 볼때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게임의 수와 수명은 여전히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현재 웹툰시장구조와도 맞닿아 있다.

 

그러면 모바일게임시장의 미래는 웹툰시장의 현재인가… 그건 아닐것이다, 무엇보다 부분유료화, 아이템거래 등과 같은 게임만이 가지는 monetizing시스템은 현재로서는 웹툰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구조이고 반대로 성공한 웹툰작가에 대한 독자들의 높은 충성도 및 Sequel 이나 차기작 성공 가능성은 모바일게임에서 기대하기 쉽지 않은 요소이다. (이점은 오히려 PC온라인이 웹툰을 닯아 있는 것 같다)

 

허나 좀더 넓은 관점에서 게임기업의 성장모델을 감안하여 본다면, 결국 “대형화”가 답이 될것이라는 것과 여전히 만드는 사람보다는 삥뜯는 퍼블리셔가 장땡이될 것이라는 점에서는 웹툰과 모바일게임 모두 동일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어찌되었건 콘텐츠는 유저(독자)를 따라가는게 순리이고, 아무리 채널이 바뀐다고 해도 잘만든 콘텐츠를 비트할 수 있는 것 또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이시장의 순리일것이다. 하지만 명심하자, 내가 콘텐츠를 만들어 유저들에게 던졌을 때 최소한 유저들이 그 앞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 이건 PC가 되었던 스마트폰이 되었건 변하지 않는 진리일 것이다. 정신 빠짝!!!

 

200906180306

기술과 필요가 가끔씩 전도되는 경우가 있다.

과거 화상전화, 콩코드가 그러했고 최근에는 3G폰의 동영상통화가 그러했다.

단순히 기술이 이루어낼 수 있는 한도를 보여주고 싶다면 할말 없음이지만, “기술이 너희를 자유케하리라”라는 다소 유치한 테크노피아적 발상의 광고까지 한다니 나원…

아바타의 영향이 큰 이유겠지만, 3D컨텐츠가 가지는 경제적 지형을 이해하지 못한데 따른 몰상식이 이런 유치한 상황을 만들어냈으리라…

1. 3D컨텐츠 방송은 또다른 메체이다

쉽게 말해서 3D컨텐츠 방송은 전혀 다른 미디어이다. 만드는 기기도 다르고 보는 기기도 심지어는 송출방식도  다르다. 다른 미디어와의 호환성이 전혀 없다. 특히 가장 큰 송출, 이거… 아직 표준이라는 것도 없다. 물론 HDTV또한 초기에는 표준이 없긴 매한가지였긴 했지만, 여하튼 당장 방송국이 표준을 못정했으니 볼 방법도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방송으로 3D를 볼날은 상당한 미래가 될것이다.

뭐 좋다, 세상은 가장 빨리 합리적 출구를 찾아나가기 나름이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돈”이다. 이미 HD방송으로 인해 막대한 사회적 비용으로 허덕이고 있는 방송계가 3D라는 부담을 또 견뎌낼 수 있을건가 하는 점이다.

<<계속>>